◎家禮와 家家禮
金時晃(慶北大名譽敎授)
1. 머리말
우리나라의 모든 禮法은 고대부터 일반적으로 周禮 儀禮 禮記인 三禮에 근거하여 마련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高麗末期 朱文公家禮가 들어와 朝鮮時代에 널리 보급된 뒤부터는 冠婚喪祭를 비롯한 일반 禮節이 대략 家禮에 따라 행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禮節을 論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家禮’란 말보다 ‘가가례’란 말을 더 많이 함부로 써 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가례란 말은 집집마다 다른 예를 행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祭祀나 喪事에 있어서 各 地方이나 門中에 따라 약간 달리 시행하고 있는 예절에 대해 가가례란 말이 주로 言及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가례란 말을 이와 같이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가가례란 말의 유래를 고찰해 보아 그 말의 출처가 어디인지, 어떤 뜻으로 유행되어 왔는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2. 국어사전과 漢字辭典의 ‘家家禮’ 풀이와 出典
가가례란 말이 대부분의 국어사전이나 漢文辭典들에서는 어떤 의미로 풀이 되어 있으며, 古文獻에서의 出典은 어디인가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국어사전과 漢字辭典의 풀이
[한글학회 큰사전, 을유문화사 1957] ‘각 집안을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
[홍웅선 김민수 공편 새사전,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59]‘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李熙昇 編 국어대사전, 民衆書館 1982] ‘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풍속 습관’
[張三植 大漢韓辭典, 進賢書館 1982] ‘(國)집집마다 달리 행하는 예법 풍속 습관’
[한글학회 편 우리말큰사전, 어문각 1991]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
[韓國漢字語辭典 卷二 63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1997] ‘집집이 서로 다르게 행하는 예법’ <松南雜誌 林氏本 李 方言類 近取篇> ‘家家禮’
[敎學 大漢韓辭典, 敎學社 1998.] ‘집집마다 각기 다른 그집안 고유의 예법 풍속 습관’
[한국고전용어사전 전5책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3.30] ‘가가례’란 말이 없음.
[漢韓大辭典 總15冊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2003] ‘家家禮’란 말이 없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총29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8.20. 4쇄발행] ‘家家禮’란 말이 없음.
위와 같이 가가례란 말이 光復後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국어사전이나 몇몇 漢韓辭典들에 이와 같이 풀이해 놓았지만 이 사전들은 다 일제 强占期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만들어진 사전들에서는 이 말을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四書三經은 물론, 조선시대의 그 많은 禮書들에서도 이 말은 전혀 찾아보기 어려우며, 朝鮮王朝實錄에 찾아보아도 이 말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단 [松南雜誌]에 家家禮란 말이 등재되어 있으나 出典도 없고 풀이말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참고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筆者는 이 家家禮란 말의 出典을 찾아 그 말의 由來를 알아보려고 4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노력해 왔다. 지금은 모두 作故하였지만 禮學의 大家인 큰 선비들에게 물어도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고, 伊藤博文의 ‘朝鮮 百姓들은 이제 모두 家家禮로 할지어다’란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왔기 때문에 혹시 朝鮮總督府의 朝鮮敎育令에 있지 않을가 하여 日本 조도전대학 도서관에 가서 地下 3층 4층에 가득 차 있는 朝鮮總督府 文書를 3시간여 동안 찾아보다가 피로에 지쳐서 포기하고 돌아 왔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儒學을 공부하러 다니는 권병도 君이 뜻밖에도 ‘家家禮’의 출전을 알았다고 하므로 깜짝 놀라 살펴보니, 朝鮮 高宗 때 經筵에서, 性齋 許傳 선생이 高宗에게 ‘당시 古禮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행하고 있는 예절’을 경계하여 家家禮란 말을 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또 李圭景의 五洲衍文長箋散稿 禮辨證說에 家家禮란 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2) 家家禮의 出典
(1)英祖의 古稱家家禮
[朝鮮王朝實錄 英祖 117卷, 47年(1771 辛卯 淸 乾隆 36年 10月 8日(乙亥) ‘上御建明門 禮曹判書 鄭弘淳奏曰 慶基殿祭物 一如永禧殿 而無用牢之事 肇慶廟祭物 亦當遵此乎 上曰 古稱家家禮矣 一遵慶基殿例擧行 弘淳曰 慶基殿祭享 香祝殿官 每前期一朔陪進矣 今此肇慶廟香祝 亦依此例爲之 而祭器皿 自京措備下送事 請預爲分付 允之’ [國史編纂委員會 朝鮮王朝實錄 44-397 下左]
◯[黎湖先生文集卷之 二十八 海平尹公墓誌銘] ‘平居以擊蒙要訣隨身 書其祭儀於屛 以爲後式 或謂家家有禮 不必然則 輒斥之曰 聞有家禮 未聞有家家禮也’ [韓國文總 197-60]
[趙在三